문화콘텐츠그룹 시인보호구역(상임대표 정훈교)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덕수리를 배경으로 한 김고운 작가의 에세이집 『덕수리 옥순씨』를 출간했다. 이 책은 덕수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송옥순 할머니의 삶을 중심으로, 제주 여성의 일상과 노동, 가족의 기억을 차분히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덕수리 옥순씨』는 관광지로 소비되는 제주의 이미지와 거리를 둔다. 대신 새벽마다 물허벅을 이고 오르내리던 길, 재래식 화장실로 향하던 밤길, 모슬포 오일장에 맞춰 꽃단장하던 아침, 삼거리 슈퍼에서 김밥 재료를 고르던 저녁 등 덕수리 마을의 생활 풍경을 통해 제주의 시간을 복원한다. 이 책에서 제주는 배경이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로 존재한다.
화자는 어린 손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한 사람의 생을 온전히 바라보는 기록자로 나아간다. 할머니는 제주 여성의 ‘강인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이 아니라, 먼저 일어나 밭일을 하고, 먼저 걱정하며, 말없이 곁을 지켜온 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케키”라 부르던 생일 케이크, 장날을 앞두고 거울 앞에 오래 서 있던 모습, 어둠 속에서 손녀의 길을 비추던 손전등 같은 장면들은 인물을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무게와 애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길’과 ‘밥상’은 제주 생활사의 중요한 단서다. 물허벅을 이고 오르내리던 골목길, 오일장으로 향하는 버스 노선, 화장실로 가는 밤길은 삶을 밖으로 이어주는 동선이며, 지슬 반찬과 김밥, 풀빵과 케이크가 놓인 밥상은 늘 사람을 다시 안으로 불러들인다. 이 두 요소가 교차하며, 제주의 하루가 어떻게 버텨지고 이어졌는지를 조용히 증명한다.
제주4·3과 한국전쟁 같은 시대의 상처 역시 이 책에서는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말이 줄어든 밥상, 조심스러워진 말투, 생활 속의 긴장과 침묵으로 스며든다. 역사는 사건으로 제시되기보다, 삶의 결 속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감지된다. 『덕수리 옥순씨』는 제주의 현대사를 개인의 생활사 안에서 조용히 포착한 기록이다.
에세이집은 「아홉 살 인생」, 「재래식 화장실의 시간」, 「아롱이의 숨겨진 비밀」, 「용한 심방의 굿」, 「모슬포 오일장」, 「가을 소풍」, 「할머니의 케키」, 「옥순 씨의 기억저장소」, 「마라도 여행」, 「가족들의 편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꼭지는 독립적인 에피소드이면서도, 함께 읽힐 때 한 제주 여성의 생애가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구조를 이룬다.
문화콘텐츠그룹 시인보호구역 상임대표 정훈교는 추천사에서 “『덕수리 옥순씨』는 인물을 상징이나 이념으로 환원하지 않고, 말투·동선·식사 장면 같은 구체적 디테일에 화자를 고정한다. 서정이 과하지 않고, 감정 또한 설명조로 흐르지 않는다. 이 글의 힘은 메시지가 아니라 축적에 있으며, 기억을 조직하는 서사적 기록으로 작동한다”고 평했다.
『덕수리 옥순씨』는 제주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다만 덕수리에서 살아온 한 사람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 놓아둔다. 그 덕분에 독자는 감동을 요구받기보다, 자신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겹쳐 읽게 된다. 이 책은 제주의 삶을 기록한 산문이자, 사라지기 쉬운 생활의 언어를 붙잡아 둔 조용한 기록이다.